왜 로고 계속 바꿔요?

왜 로고 계속 바꿔요?

로고가 멋진 것도 좋지만, 상표도 지켜야해!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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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맑음이라는 이름의 유래

서로맑음이라는 이름에 유래부터 설명해야겠습니다. 서로맑음은 사실 대표자인 제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매우 단순한 생각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고등 국어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필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학교에 미술 대학을 목표하는 학생이 극도로 적었거든요. 그래서 본명이 아닌 필명에 대한 이야기가 수업중에 나온 것입니다. 저한테 그런 필명을 생각해둔 게 있냐는 거였죠. 갑자기 든 생각이 '서로맑음'이었습니다. 제 한자 이름을 한 글자씩 분해하여 해석했을 뿐입니다. 서로 상(相), 맑을 준(俊). '상준'이란 이름이 너무나 흔했고 같은 반에 이상준, 이상준, 박상준. 그렇게 3명의 상준이 존재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저랑 모두 다른 한자를 쓰더라구요. 그래서 단순하게 정한 이 이름이 그대로 사업자명이 되었습니다.

로고의 변천사

로고 변천사 2019-2023

첫 로고는 제가 도장돌에 돌칼로 서, 로, 맑, 음을 각각 파서 만든 것을 패스로 사용해서 로고로 사용했습니다.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많아서 보여주기 쑥스러운 글귀들을 제 계정에 올려왔습니다. 서로맑음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계기가 필명이었기에 필명처럼 사용했습니다. 글귀 뒤에 도장 로고를 사용하니, 어색해도 모양새는 퍽 작가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포트폴리오와 웹사이트를 제작하며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았는데 '이건 디자이너 로고가 아니다'를 들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수 년 간 캘리그라피 외에도 다른 작업물을 올렸지만 제가 무엇을, 전문으로, 목표하는, 철학이 있는 디자이너인지 전혀 표현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디자인한 것이 2020년입니다. 이 때 새로운 계정을 만들며 캘리그라피를 쓰는 사람도 졸업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개발자로 취업을 하게 됩니다. 때는 SPA(Single Page App)이 트렌드였고 주로 다루는 프레임워크 하나로 회사를 다녔습니다. 모두가 이런 시절을 겪진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운이 좋게도 지인을 통해, 학교 선배를 통해 일을 하게 되어서 덕분에 회사 규모는 작았어도 잘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시절에는 로고를 가장 모던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로맑음의 첫 철자의 자음으로 쪼개서 X,ㄹ,ㅁ,ㅇ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3D를 웹사이트에 표현할 수 있는 three.js에 관심을 가졌을 땐 이 도형을 3D로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유연한 정체성, 플렉서블 아이덴티티

리디자인을 고민하던 때의 메모

이 때까지도 창업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참여라도 한 프로젝트, 오롯이 진행한 프로젝트 모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죠. 진짜 창업은 공주시에 내려왔을 때 했습니다. 내려올 때 생각해본 게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이 일을 좋아하는지. 일이란 것에 어떻게 임하는지를요. 취업은 개발로 했지만 일은 디자인도 진행했습니다. Adobe 사의 툴은 익숙하고 디자이너가 전달한 Figma 파일을 직접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저것 한다는 것이 잡탕스러운 면일지, 나의 장점이랄지. 고민을 많이 한 때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그래, 나는 내 손에 잡히는 일이면 거부감 없이 일단 시도하잖아, 그걸 표현해보자!"가 나온 것이 2023년의 로고입니다.

2023년도 로고

양 손과 두 눈 사이에 그림을 그려서 모두 로고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유연한 정체성(플렉서블 아이덴티티, Flexible Identity)으로 제작하여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디자인도, 개발도, 가끔은 촬영도, 글쓰기도, 이것저것. 적재적소하게 투입하되 손과 눈은 제자리에서 일관된 태도를 갖는, 그런 마음가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멜버른의 로고

이런 로고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디자인 컨설팅회사 렌더(Landor)가 7개월에 걸쳐 리디자인한 멜버른의 도시 로고디자인입니다. 장기적인 지속가능성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 철저한 연구와 워크숍, 인터뷰 등이 진행되었고 다채로운 면모를 담기 위한 로고를 완성한 것입니다. 멜버른은 이 디자인으로 'Feel the City' 캠페인 외에 현재까지도 사용하며 다채로운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로고는 너무 자유분방에 만들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태도보다 저의 자유가 우선이었던 걸까요? 비율과 비례, 그림의 삐뚤빼뚤함조차도 모든 것을 유연한 게 아니라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호기롭게 로고의 형태인 8가지 형태별로 명함을 8종으로 만들어서 배부했습니다(도대체가 무슨 생각인지).

맥북을 사용중인 로고

문제는 노트북을 사용중인 로고를 기본 로고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그림으로 그려진 명함이 중요하고 나머지 7종의 명함은 필요하지 않게된 것입니다. 특히, 디자인 스튜디오의 '스튜디오'인데 지역인 특징인지 '사진 스튜디오'로 이해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바람에 카메라가 그려진 로고가 담긴 명함은 한 장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일을 한다는 철학은 하나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죠.

브랜드의 철학을 담고, 그 상표도 지켜야 해

결정적인 전화가 한 통 있었습니다. 수 년 전에 함께한 클라이언트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며 확장하고 계셨고, 종종 로고디자인을 의뢰하셨던 분입니다. 새 브랜드를 만드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통화로 제게 한 말은 "서로맑음이란 이름, 제가 써도 되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쿵. 무엇인지도 모를 무언가가 제 속 어딘가의 윗편부터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안 된다고 설명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그건 잘못된 행위입니다'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당시 통화상으로는 못했습니다.

로고를 수정해야겠지만 '서로맑음'이라는 이름도 지킬 수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2024년도 초에, 지역지식재산센터(RIPC)에서 진행하는 소상공인 상표출원 지원사업를 신청했고 현재 '서로맑음'은 상표출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출원 후 14개월정도 진행된다고 하여 잘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학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이런 내용까지 전략적으로 제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지원사업은 올해도 하고 있습니다.

서로맑음 리브랜딩 2026

서로맑음의 로고는 그렇게 고민하는 사람만 남았습니다. 서로맑음은 결국 저의 모습이고, 일하는 태도의 모습인 것은 여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하던 심볼 영역에서 '가장 나 답다'고 답변해준 주변인의 의견을 수렴해 과감히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비율과 비례, 굵기를 다듬었습니다. '서로맑음'이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 이름 뒤에 함께하는 '스튜디오 Studio', '라이프 Life'의 글자 스타일을 달리하여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덜어낸 현재의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