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프로젝트가 안 들어올까? 에이전시 비수기의 현실

요즘 왜 프로젝트가 안 들어올까? 에이전시 비수기의 현실

불경기와 선거철 비수기, '단가 낮추기'의 늪에 빠진 대행사들을 위한 경고와 새로운 생존법은 없을까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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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공간, 사무실

모든 사업자분들은 걱정을 합니다. 적막한 공간에서는 더 크게 걱정하지요. 서로맑음스튜디오 3년차가 시작된 2026년 초, 제가 그런 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사무실입니다.

올해도 새해 엽서를 나누고 각자 상황을 나누었다. '상황이 안 좋아서요', '경제가 나빠져서요'라는 말은 유행어처럼 돌고 있습니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2025년에 폐업이 100만 건이라는 소식을 같이 접하니 더 와닿습니다. 뭘 안해서일까, 뭘 잘못해서일까. 한숨의 무게도 같이 커집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큰 계약 건들이 이어져 매출이 연달아 상승하던 중입니다. 공주뿐만 아니라 아산, 부여, 울산, 하동 등에서 여전히 찾아주셨고 영업이익률도 개선했습니다.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새해가 되면 운영 및 유지보수를 위하여 클라이언트 분들께 연락을 추가로 합니다. 이 연락을 하던 중간에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비수기에 접어든 것입니다. 마치 겨울이 다 지나 눈이 녹아버린 썰매장이 된 것처럼요.

에이전시 모델에도 비수기가 있다

에이전시(대행사) 업에도 비수기가 있다니요? 제가 느끼기엔 확실히 있습니다. 기업도 기관도 예산을 모두 펼쳐보고 확정하기 전엔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상반기가 아니라 하반기 프로젝트를 약속하게 됩니다. 하반기에 몰리게 된 프로젝트는 하반기에 마무리가 됩니다. 운영 및 유지보수에 관한 계약 논의 또한 하반기에 하게 되지요. 하반기에 진행하게된다면 그거대로 다행입니다. 일정과 예산에 의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상반기에 뭐라도' 할 수 있길 바랬던 저는 3년째 이런 상황을 겪다보니 정산한 잔금들을 모두 주식, 채권, MMF 등으로 배분했습니다. 좋아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방에만 있는 변수, 선거

로컬에만 있는 변수인가요? 저만 느끼는 것인가요? 바로 선거입니다. 선거가 있는 해는 모든 곳이 선거이 선거가 마무리 되기 전까지 많은 사업들이 멈춥니다. 특히 '신규 프로젝트'는 자칫 잘못하면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진행되질 않습니다. 2025년도에 대선을 치루고 2026년도에 지방선거를 연달아 앞두고 있으니, 지지를 떠나서 사업적으로는 빨리 선거가 끝나길 기다리게 됩니다. 나라장터 또한 선거를 앞두니 공고가 훅 줄어든 게 느껴집니다.

공주 금강공원을 정리하는 중인 포크레인

그래도 뭐라도 해야하는 것 아냐?

이전 글에 이야기를 했지만 서로맑음 스튜디오는 플랫폼에 등록하여 프로젝트를 수주하고있지 않습니다. 플랫폼은 분명 사업 초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수수료율과 가격경쟁으로 무리하게 일을 하게 되는 것은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한테 그런 무리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이전까지 문의를 받고, 수주하거나 수주하지 않은 모든 프로젝트를 기록하여 어떤게 좋았고, 안좋았고 나의 에너지를 뺏겼는지, 좋았는지 배운 게 있는지 등을 모두 1줄 복기로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합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더 할지, 돈때문에라도 할지, 더 하지 않을지를요. 하지 않을 프로젝트들을 정리해두면 '아니 그렇게 다 따져서 일을 어떻게 해? 뭐라도 해야하는 것 아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기서 '뭐라도' 하는 것은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가격을 낮춰서 계약한다

문의 하나라도 아쉬운데 가격을 낮춰서라도 계약을 해야겠지요. 사업을 어떻게든 유지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시작하고 마련하고 기반을 다져온 사업이니까요. 서로맑음 스튜디오는 소프트웨어 산업협회와 디자인산업협회가 정한 공식적인 평균 노임임금을 기준으로 가격대를 선정하지만 불경기와 적은 문의 앞에서는 그 단가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POV: The creative agency model is dead – that’s why I shut mine down, it's nice that 글 제목

세계적인 디자이너 Madison Utendahl 은 포브스 선정 가장 영향력있는 '30세 이하 30인'에도 이름을 올리고, 웨비상(Webby Award)에서도 2번이나 수상한 뉴욕의 유명한 크레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입니다. 그녀는 최근에 이런 글을 올립니다. "에이전시 모델은 끝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에이전시를 접었습니다(POV: The creative agency model is dead – that’s why I shut mine down)"라고요. 자신이 운영하던 에이전시가 어떻게 '끝났는지' 단계별로 작성하고 어떻게 일해야할지 작성했습니다. 그녀가 말한 '내 에이전시를 끝내게 한' 첫 단계가 바로 가격을 낮춰서 계약하기 였습니다. 사무실 임대료, 인건비를 포한한 에이전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유지한 채 가격을 낮춰서 계약을 해온 것입니다. 처음엔 계약이 생겼으므로 좋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빠집니다. 낮아진 단가로 더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고 일하는 사람들은 지치게 만들고, 프로젝트의 퀄리티는 낮아집니다.

당연히 AI도 한몫합니다. Madison Utendahl은 여전히 인재육성에 대한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대행사가 아닌 클라이언트들도 AI를 쓰고 있고 무드보드나 시안을 검토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절박해진 에이전시들은 입찰가를 낮추게 됩니다. AI를 반대하더라도 이 시장 환경이 변한 것을 눈치채야한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시간당 청구 방식(WBS 등)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듀오 혹은 콜렉티브 모델

Madison Utendahl 는 그럼 다음 모델을 무엇으로 제시했을까요? 미래에는 듀오와 콜렉티브(Duos and collectives) 모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고, 독립적인 디자이너들이 협력하고 유대감을 갖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앞에서 하나의 팀으로 합쳐 제안서를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재정적으로 독립하여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형태를 갖추는 것입니다.

저게 한국에서 되나?

앗, 읽어보면 또 이런생각이 들지요. '한국에서 저게 되나'라는 생각을요. 게다가 단가가 애초에 낮은 프로젝트에는 불가능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줄 수 있고 그걸 어떻게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었는지를요. 저희 스튜디오 또한 지속가능한 모델을 생각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듀오와 콜렉티브 형태를 할만한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를 꾸준하게 찾고 있습니다. 꼭 같은 직군일 필요가 없지요,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그걸 같이 해결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환영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