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난 삶
서울을 떠난 계기, 서로맑음 라이프를 만든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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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난 계기
서울을 떠나 공주시에 자리한지가 4년을 보고 있습니다. 서울을 떠날 당시에 부모님께서는 "왜 사라지는 곳에 가냐"고 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같이 20년은 넘게 살던 도시에 대해 '사라지는 곳'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무슨 계기가 있어서 서울을 떠났을까요? 때는 2021년 말,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개발자로 일하다가 폐업을 겪었을 때, 서울에서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서울의 삶이 어땠는지요. 서울에서의 삶은 삭막했습니다. 소쿠리에 가득한 콩나물처럼 지하철에 사람들이 몸을 싣고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정도 되는 길을 매일마다 왔다 갔다… 괴로울 뿐이었습니다. 그 놈의 인프라. 집 밖은 아무데도 나가질 않았고, 술을 먹고, 하루를 이 따위로 흘려보냈습니다. 허무했죠. 누군가 말하기를, 세상 이치를 알게 될 때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습니다. 어릴 때 친구가 겨우 인턴을 마치고 정규직 계약을 할 때, 사고로 사망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러 인천까지 갔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삶의 덧없음을 느끼던 때입니다. 도대체 삶이 뭔지.
월정리 바다에서 공주로 가길 결심하다

그러다 2021년 12월 마지막 주에, 월정리 바다로 일주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수 년 만의 여행이라 기대 반, 나머지는 뭐 모르겠고 시작됐습니다. 월정리 바다의 12월은 정말 할 게 없습니다. 바람은 거칠고, 날씨는 요란하고, 춥고, 문 연 곳은 없었으며 관광객은 주로 겨울에 월정리엔 안 온다는 것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지금 다른 예약자는 없고 혼자 이 게스트하우스를 묵고 계십니다"라며 "겨울 월정리에 혼자 오시는 분들은 대체로 생각이 많아져서 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일주일 동안 정말 할 게 없었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계획할 힘도 없었구요. 밥을 먹고, 바다를 보고, 끝이었습니다. 한 5일쯤 지나서야 '왜 같은 곳에 일주일이나 묵은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기국수, 통닭, 흑돼지, 딱새우회, 소고기우동 등 맘껏 먹어치웠지만 금세 지루해졌습니다. '와서 한 번 쯤은 먹을만한' 음식들은 모두 '한번 쯤은 먹어볼만한' 음식으로 변하고, '한 번 먹어보니 더 이상 안 찾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루해진 6일차 점심,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고사리 육개장을 맛보러 갔는데 옆 자리에 앉은 노부부가 말을 걸었습니다. "나이 들어 주책이네요, 젊은이들만 보면 말을 계속 걸어요. 허허." 하고요. 주인장과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저와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도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에는 언제, 어떻게 왔냐, 어디 어디 갔냐 등 물었습니다. 나는 생각할 게 많고 쉬어본 적 없었고 일주일 전에 물어봐서 월정리에서만 지내고 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달리 할 게 없다면 올레길을 걸어보는 건 어때요?"라는 말에 혹하여 난생처음 올레길을 향합니다. 너무 추워서 동네에 있던 빈티지샵에서 바람막이 1벌, 모자를 1개를 사서 무장하고 출발했습니다. 제가 걸었던 길은 20번째 코스로, 17.6km 정도의 길이었습니다. 이 길이와 험난함을 모르고 저는 가방에 책도, 맥북도 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마주한 올레길은 걸을 때마다 '이 길이 맞나?'하는 생각이 드는 곳으로 안내합니다. 돌길, 풀길, 아스팔트길, 모래길, 물길, 오르막길 등. 지도 앱이라도 켜봐야하나 생각될때 쯤에 띠가 나와주고 방향을 지시해주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이런 길도 있구나' 하고요.
그렇게 올레길을 쭉 따라가다가 고사리 육개장집에서 만난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아까 그 점심먹던 청년이네?" 하고 이번에도 말을 먼저 거셨습니다.

노부부는 매년 제주도로 와서 올레길을 1~3개의 길을 돌고, 모두 순회하면 반대로 다시 걷는 순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와 동행하게 된 20번째 길도 칠순잔치를 마치자마자 온 것이었죠. "이제 한 번만 더 오면 모두 돌 것 같아"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걸으면서 제주에 대한 이야기, 각자의 삶에 대해, 다른 시대상에 대해, 그렇고 그런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길 중간에 할아버지께서 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월정리를 여행하면서 제 사진을 제대로 찍지 않았더라구요. 바람에 날려 이마는 다 보이고, 걷느라 땀 흘린 얼굴과 피로한 눈가를 보면 저를 '멋지게' 찍은 모습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진이 좋았습니다. 부단히 나아가는 사람의 모습.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 하고요.

이런 삶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것도 있구나! 이 때가 바로 공주로 가길 결심한 때입니다.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그런 기분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결정하고 1개월도 안되어서 고향인 공주에 왔습니다. 하던 일인 디자인과 개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서로맑음 스튜디오는 공주시에 위치한 '공주시청년센터'에 입주해있습니다. 공주시에서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나누겠습니다.

이러한 삶도 있구나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이 자리를 새로 만들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제 이야기를 투명하게 내놓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솔직한 것보다 투명한 태도가 좋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드러내놓고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이런 얘기를 할 자리라도 마련할 수 있겠지요. 사실 이 내용들은 예전에 브런치라고하는 플랫폼을 주로 이용할 때, 썼던 글입니다. 한참 잊고 살다가 제 글에 이런 댓글을 남겨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2년 가량의 세월이 지나갔는데 새로운 글이 없어서 현재는 어떠신지 근황이 궁금하네요. 지방 개발자의 삶은 어떠셨나요?"
이런 글을 이야기하고, 사는 이야기를 전하면 많이들 물어보십니다. "서울 떠나서 잘 지내냐", "살만하냐", "먹고는 살 수 있냐", "얼마 버냐" … 무례하거나, 비아냥대는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싶은 것은 '그렇게 해도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보입니다. 초보운전자가 아는 길만 쭉 가고 빽빽한 찻길에서 차선변경을 못해 끙끙대는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저 쪽으로 과연 내가 갈 수 있을까' 하고요.
서로맑음 라이프
저도 이럴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일하는 방식, 태도, 방법 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도 있구나!' 그 기분이 핵심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곳을 저는 만들고 싶어 서로맑음 라이프를 만들었습니다. 스튜디오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는지 삶을 수집하여 인터뷰, 짧은 에세이 혹은 투명한 일기로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