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의 30년 된 구축 아파트를 사다

서울 밖의 30년 된 구축 아파트를 사다

떠난 이유가 아니라, 여기에서 살아가는 이유

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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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구축 아파트를 샀습니다.

공주시에서 다시 살게 된지가 1000일쯤, 저희 부부는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살 집을 구하기 전에 함께 살던 곳은 같은 지역의 보증금 500만원과 월세 35만원, 약 13평 정도되는 아파트입니다. 관리실과 분리수거를 하는 곳, 온라인으로 가능한 민원 등의 시스템은 잘 되어 있어 원룸보다 조금 더 부담하더라도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갖고자하는 대학생들이 선호했죠. 개강, 종강하는 때엔 방에서 큰 음악 소리와 음주가무를 즐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방학이 되면 그 소리도 사라지기에 층간소음에도 '종강까지만 보자…'하며 버텼습니다.

그렇게 산지 만 2년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 사이에 공주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함께할 소위 신혼집을 찾지 못해서였죠. 구하지 못한 이유로는 예산, 일정 등의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집을 구하더라도 그걸 공주시라는 곳에서 사야할까?'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따라왔습니다. 서울 밖에서 살면 예컨대,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만하는 의무라도 갖는 모양입니다.

"왜 서울을 떠났어? 왜 공주로 내려왔어?

(아, 고향이라서….) 그럼 공주가 살기가 좋아? 공주가 사업하기 좋아?"

개인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도 왕왕 질문을 받습니다. 제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절대로 아니지만 누군가 물어본다면 답할 뿐입니다. 간단한 질문 말고도 인터뷰, 로컬을 소개하는 대중매체 등에도 소개되기도 합니다.

윤준식 기자, <지방에서도 IT 창업 가능할까? 서울 탈출한 개발자의 실험>, 오마이뉴스, 2025. 11. 06, 출처: https://omn.kr/2fw7n

윤준식 기자, "지방에서도 IT 창업 가능할까? 서울 탈출한 개발자의 실험", 오마이뉴스, 2025. 11. 06, 출처: https://omn.kr/2fw7n

충청남도청 주관, 그레이아츠GrayArts 제작, <충남에 청년이 온다 공주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대표 편>, 출처: https://youtu.be/5cXFUhUXUTI

충청남도청 협찬, 그레이아츠GrayArts 제작, KBS1 송출, "충남에 청년이 온다 공주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대표 편", 출처: https://youtu.be/5cXFUhUXUTI

의아한 것은 이 질문은 '그냥 여기가 좋아서요'라는 대답은 용납되질 않습니다. 수긍할 수 있는 굳이 서울을 떠난 이유,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이유, 인구소멸지역에서 창업을 하는 이유, 고가 신축 아파트를 분양하지 않는 이유를 모두 관통하는 대답이어야 합니다. 이 대답을 들으러 오셨나요? 공주에 돌아온 뒤, 1000일 동안 창업, 결혼, 구축 아파트로의 이사한다는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고 소위 어그로될 만합니다. 지금 이 글의 제목에 혹하여 열심히 읽고 계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고향인 공주에 돌아와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할 뿐입니다. "그냥 여기가 좋아서요"가 맞습니다. 아무것도 관통하지 않더라도 제 속은 뻥 뚫리는 명확한 이유입니다. 동네에 좋아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친해지는 분들이 생기고, 떠나는 분들도 많지만 동네는 여전히 활기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다보니 당연히 나쁜 일도 있습니다. 얼굴 찌푸리는 일도 있죠. 불안하고 지치는 것들이 가득입니다. 올해 상반기는 일이 없어어 현금흐름이 막혀 단기근로를 했습니다. 매우 짧은 기간이었고 곧 퇴사를 앞두고 있지만, 직장에서 매우 잘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사업을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서울은 아니더라도 대전에라도 갔어야 했는데, 좀 더 일을 했어야 했는데, 고집하지말고 더 발을 넓혀야했는데 ... 하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에서 집을 샀습니다. 소위 영혼을 모아서가 아니라 매월 사용하는 모든 비용, 필요한 자금을 모두 계산하고 감당가능한 그릇만 끌어안기로 했습니다. 몇 천 원의 빚조차 달달 떠는 저는, 몇 천 원이라서가 아니라 '빚'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감당가능한 만큼만 쥐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부자여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손팔이 아무리 많아도 두 개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쥘 수 있는 것은 각자 한계가 있습니다. 분명 더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니란 것을 이젠 압니다.

거대한 세상을 알기보다 내 주변에서부터 세상을 넓혀가기

더 크고 높은 목표와 거시적인 사회 경제를 알아내려 하는 대신에 주변의 왜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제 세상을 갖춰나가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지나다니며 보이는 꽃들, 나무들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요즘은 거리의 낮달맞이꽃, 접시꽃이 예쁘더랍니다.

사는 곳이 어디더라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탓하지 않고 본인의 세상을 나로부터 조금씩 넓혀나가보는 것. 그것이 어딜 떠난 이유가 아니라, 여기를 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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